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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眠蠶(다섯잠을 잔 누에) 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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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8회 작성일 19-03-03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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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眠蠶(5면잠)이라고 있다. 알에서 깨어나 뽕잎을 먹고 잠자며 허물을 벗고 크는 누에는 다섯 잠을 자면 고치를 지을 자리를 잡는다. 넉넉히 먹으면 비단실을 뿜어내며 스스로를 가두고는 번데기가 된다. 이 번데기는 羽化(우화)하여 나방이 되고, 고치를 뚫고 나와 알을 낳으면 알이 또 누에가 되는 한 살이를 되풀이 한다. 우리가 필요해서 챙기는 비단은 (나방이 되지 않도록) 고치를 삶아 번데기를 죽이고 뽑아낸 실이다. 누가 雅號(아호)가 있느냐고 해서 고민타가 五眠蠶으로 할까보다 생각했다. ‘다섯 잠을 잔 누에’ - 스스로를 가두고 비단실을 토하는 누에 말이다.

 

엊그제 폐교를 인수했다는 지인이 아무 책이라도 좋으니 구해 달라한다. 100만 권은 있어야 폐교를 책으로 꾸밀 것 같단다. 미련 없이 주었다. 원서는 한 권에 100불을 넘게 주고 산 것이 많으니 아깝지만 언제 다시 보겠는가 싶어서 마음 비우기로 했다. 삽지에 메모가 있고 빛바랜 형광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신문 스크랩과 복사 자료들도 모르는 체 했다.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입사하고 잉크도 마르기 전에 기획실의 부처장으로 3년이나 일을 본 적이 있었다. 무모했다. 입시철이면 평균 5:1이 넘어 떨어뜨리는 문제로 애태울 때였다. 86년에 ᄒᆞᆫ글이 나왔을 무렵 남 먼저 사서 익혔고 지금의 엑셀인 로터스 1-2-3라는 프로그램으로 자료처리를 가르쳤기에 방학 때 전 직원들에게 ᄒᆞᆫ글워드와 로터스를 배우게 했다. 사무실에 타이피스트가 있었던 시절이니 반발이 심했지만 밀어붙였다. 조만간 각자 컴퓨터로 일하게 될 거라고! 학교에 PC룸을 확장했고 도서관의 책에는 바코드를 붙이고 도난방지 태그를 달고 정보화 했다. 외부로 나가는 발간물이 아까워 출판부를 만들었다. 전자출판시스템을 구비했다. 논문은 원고지 대신에 워드를 쳐서 디스켓으로 제출케 했다. 그리고 땅을 파고 벽을 뚫어 랜(LAN) 케이블을 연결했다. 종이 말고 이메일을 주고받자는 것이었다. 90년대 초반이니 정말 혁신을 밀어붙였다. 한강 이남에서 앞서 나간다고 견학을 오는 이웃 학교가 많았다.

 

97년 말, YS 정권말기, DJ 당선자는 외환유동성 위기를 맞아 IMF에 달러 빌리는 차용증에다 연서를 하였다. 우리가 IMF라는 契(계)를 들어 곗돈을 붇고는 그걸 찾아 쓰려는데 온갖 수모를 겪었다. 회계기준을 국제적인 것으로 바꾸었고 말로주고 되로 받는 컨설팅을 받았다. 기업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 깨어졌고 구조조정과 명퇴라는 말이 등장했다. 거리에 노숙자가 넘쳐나는 만큼 가정도 파탄이 났다. 돌 반지도 팔아 국민들이 나서서 빚을 갚았지만 많은 기업이 문을 닫으니 자연히 학교에도 학생이 줄어들었다. 마른 수건을 짜는 이때부터 휴대폰이 불티나게 팔리고 전자상거래가 피어나자 준비된 사람은 바빠지게 된다.

 

HTML과 쇼핑몰을 공부했던 나는 전자상거래 전공을 만들었고 2000년대 들어 e-비즈니스학부를 탄생시킨다. 사서 고생을 했다. 지금은 자료와 정보, 서적이 넘쳐나지만 당시에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를 하려면 정말 힘들었다. 적절한 교재가 없고 프로그램도 엉성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났다. 그간의 변화가 상전벽해라면 향후 20년이 지나면 천지개벽일 것이다. 인공지능과 딥러닝,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대를 맞아 교육에도 혁변이 올 것이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을 준비하고 앞서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다. 오히려 기회가 있다. 스타 교수, 스타 학과가 가능하다.

 

돌이켜보니 잘못 만난 이웃 때문에 안할 고생을 한 적도 있다. 경남대학교가 살아있는데 경남국립대학교를 하겠다고 나선, 어이없는 시비에 교명을 지키느라 대법원까지 재판을 다닌 것이 거의 4년이다. 2009년에 기획처장을 맡고 생긴 일이다. 언론에 인터뷰를 하고 학교 측의 입장을 밝히다 보니 카메라가 낯설지 않다. 그간의 대응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결재서류, 보도 자료와 판결문 등을 모아 교명수호백서를 발간했다. 그러다보니 특허권과 상표권 등 지식재산에 반풍수가 되었다. 이런 걸 回顧(회고)하는 것이 懷古(회고)하는 것이겠지만.

 

86년생인 큰 딸은 내가 여기에 일을 시작할 때 태어났다. 세살 때에 내 구두를 끌고 나가 계단에서 굴러 큰 일 날 뻔했다. 아는 한 사람은 큰 건물을 가지고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꿈이기도 한 그 건물주는 밥 한 끼를 못 산다. 수십억인지 수백억인지의 건물에 빚을 좀 내서 샀는데 세가 잘 안 나가는 모양이다. 딴 데서 벌어 이자 갚기에 버겁다는 소문이 있다. 무리를 한 것 같다. 큰 구두나 큰 모자, 큰 옷을 입고 다닐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장 불편하고 안 어울리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분한 자리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되돌아보면 나도 과분한 자리에 앉아 힘들어 했던 것 같다. 이제 작은 그릇인 줄을 알기에 어울리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참 편하고 넉넉할 것이다. 앞으로 비우고 내려놓으라 하니 작은 고치(?)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 싶으다.

 

세어보니 33년을 준비해(?) 교수되었고 33년을 교수로 봉직했다. 욕심이겠지만 33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무얼 어떻게 할까? 한 달쯤 전엔가 교외로 나갈 일이 있었다. 과수원을 지나가는데 앙상한 나목에 말라비틀어진 열매 하나 없었다. 마지막 입새조차도 없어서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오뉴월과 한 여름의 그 풍성했던 모습, 단풍들고 서리 내릴 때의 그 주렁주렁한 빨간 사과가 언제이던가 싶다. 누구나 그렇게 살다 가는 것임을 일깨워준 絶好(절호)였다.

 

정년이나 퇴직이라는 말이 정학이나 퇴학과 연상되어 곱진 않다.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준비가 덜 되었다는 증거다. 월영캠퍼스가 74년에 문을 열었다. 73학번인 나는 군복무와 대학원을 빼면 이 월영언덕을 뻔질나게 오르내렸다. 나와 가족이 별 탈 없이 먹고 산 직장이기에 무얼로 고마움을 표할지 모르겠다. 정말 행운이다. 그래선지 어찌 떠날까 두렵다. 아쉬움만 남는다. 혜민스님이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많은 밝아지는 것들을 볼 수 있다면 아마 오래도록 들여다보지 못한 내 양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국제공항에서 소음속의 평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제각기 다른 언어들이 고막을 진동하나 들리지 않으니 얼마나 편안했던지 모른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들리나 들리지 않는 것,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이제 들으려하나 귀 기울이지 못했던 일에 빠질 수도 있겠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새로 할 일을 찾는다면 이 세상에서 먹고 입고 배운 혜택을 되갚고 비우는 일일 것이다. 空手去(공수거) 아니던가? 조기조(대학원장, 경영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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